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를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겠다.
건국과 연결하기는 무리가 있다.반면 ‘봉도동부근전투 상보 등 일본 측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 사망자는 일관되게 1명이다.
하지만 기형적인 홍범도 묘역과 홍범도길 지정 등으로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우선 봉오동 전투 전과(戰果)를 놓고 기록마다 엇갈린다.홍범도 묘비 글은 대전현충원 9만7600여기 가운데 유일하게 신영복(전 성공회대 교수) 서체로 썼다.
02㎞를 ‘홍범도장군로로 지정했다.하지만 홍범도를 보는 시각은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독립군을 배신한 공산주의자 등으로 진영에 따라 달라진다.
홍범도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대전현충원에는 백선엽 장군.하지만 기형적인 홍범도 묘역과 홍범도길 지정 등으로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
유해 안장부터 계속되는 일련의 과정은 ‘홍범도 과잉이란 생각이 든다.신영복은 통일혁명당 사건(국가보안법)으로 20년간 복역했다.
당시 국가보훈처는 홍범도가 안장되기 13일 전 이장(移葬)한 애국지사도 8평에 안장할 수 있게 묘역 운용지침을 바꿨다.최근에는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이 일자 홍범도장군로에서 걷기대회가 열렸다.